제 1차 세계대전 서부전선
프랑스 아르트와 지방, 아라스(Arras)
쁠라쓰 데에로(Place des Heros, 영웅들의 광장)
프랑스 릴(Lille)에서 일주일을 보내고 아라스(Arras)로 내려왔다. 남쪽으로 50km쯤 된다. 내 기준에서야 남쪽으로 내려가는 것이지만, 프랑스쪽에서 보면 아라스는 꽤 북쪽에 있고 아직 플란더런의 냄새가 나는 도시다. 네덜란드 남쪽과 벨기에와 이 부근은 예전에는 하나의 문화권이었기에, 그 흔적을 여기저기에서 볼 수 있다. 말 그대로 흔적이다. 기억. 아련한 옛 자취.
플란더런풍 건물들.
아라스는 중세시대에는 저지대와 프랑스의 경계에 있었던 지라, 역사책에는 아라스에서 체결된 조약이나 협정이 여러 번 나온다. (네덜란드에서는 아트레흐트Atrecht로 알려졌음.) 옛 아르뜨와(Artois) 지방의 중심지이고 현재는 빠드 깔레의 도청 소재지이다.
제 1차 세계대전의 서부전선에서, 프랑스의 포슈(Foch) 원수가 이끄는 영불 연합군이 독일군과 싸운 쏨므 강 전투의 1차 방어선이다. 아라쓰에 묵으면서 주변의 서부전선 전투지와 군인묘지를 찾아갔다.
시청사, Place des Heros
시청사의 종탑(belfort). 플란더런의 상업도시들이 그랬듯 아라스의 종탑도 높고 힘차다. 16세기 것이고 75미터 높이. 시청사는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복원되었다. 유럽에는 수백 년된 건물이 아직 남아있는 반면 한국은 그렇지 않다는 비교를 할 때, 한반도에는 침략 전쟁이 많았기 때문이라는 말을 흔히 하는데, 그리 타당하지 않은 분석이다. 몇 가지 이유를 들 수 있지만, '보존'과 관련해서만 말하자면, 유럽 사람들은 복원에 능해서 그렇다. 물론 복원하고자 하는 의지가 먼저다. 전쟁이 없었고 건축 재료나 건축술이 견고하여 보존이 잘된 것이 아니라, 부숴지고 불타는 상황을 되겪으면서도 그 자리에 '원형'을 다시 지으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이 광장의 건물들도 마찬가지인데, 16세기 건물이 지금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잿더미 위에서 원형대로 다시 지은 것이다.
아라쓰 시청사
시청사, 1931년에 복원 완료
제 2차 세계대전시 독일군에 처형된 아라스 시민을 기리는 기념물, 아라쓰 시청사 외벽
광장 이름에 '영웅'이 들어간 걸 보면 전쟁과 관련이 있다. 아라스는 제 2차 세계대전도 호되게 겪었는데, 1940년부터 4년간 독일군의 점령지였다. 독일군에 저항한 시민을 기리고자 전후에 '영웅 광장'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아라스의 거인들(Les Geants d'Arras)
아라스 시청사 안에 들어갔더니 거인 가족이 서 있었다. 안내설명을 보니, Colas와 Jacqueline이라는 이름의 농민 부부인데 (아들 Dede는 1995년에 탄생), 1800년대 초부터 이 고장에 전해오는 이야기의 주인공이라고 한다. 아라쓰 사람들은 1891년에는, 전래설화 속의 이 거인 부부를 실제 만들었고 고장 축제 때마다 함께 즐겼다. 그런데 제 1차 세계대전때 독일군의 공습으로 그만 망가졌고, 전후 다시 만들었는데 1940년에 다시 사망. 1981년에 새로 만든 것이라고. 원래는 키가 6.25미터였는데 4 미터로 줄였다고. 플란더런과 가까운 프랑스 북쪽에 남아있는, 귀여운 민속문화다. 지난 여름, 뚜르 드 프랑스 경주의 자전거행렬이 마침 아라스를 지나갔는데, 들판에 이 거인 부부가 나와 서있었다.
'서부전선 > 프랑스 아르트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라스] Thélus Cemetery (0) | 2015.04.20 |
---|---|
[Arras] Vimy Canadian Cemetery No.2 (0) | 2015.04.20 |
[Arras] Vimy Canadian Memorial (0) | 2015.04.20 |
[Arras] Arras Flying Serivces Memorial (1) | 2015.04.19 |
[Arras] 생 로랑 블랑쥐, 묘지 세 군데 (0) | 2015.0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