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 Railway Bazaar, Paul Theroux, 1975
미국의 영문학자, 소설가이자 여행작가인 폴 써로우Paul Theroux의 유라시아 횡단 기차 여행기. 여행기의 고전이다. 써로우의 작품으로는, 영화로 만들어진 소설《The Mosquito Coast》이 가장 잘 알려져 있고, 여행작가로서는, 바로 이 책이 데뷔작이자 성공작.
1972년, 런던에서 파리, 밀란, 동유럽을 지나, 이란, 아프가니스탄, 인디아에서 동남아시아를 거쳐, 일본에서 배로 러시아로 건너가, 시베리아 횡단열차로 런던으로 돌아가는 여정이다.
일본 여행길에 이 책을 가져갔는데, 호흡이 짧은 탓인지 (장소 중심이 아니라 기차 중심이라 파리에서 인도로, 인도에서 베트남으로, 한 나라에 몇 쪽 이상 머물지 않는다.) 비행기에선 잘 읽히지 않았고, 좀 지루하다 싶었다. 그런데 일본에 가서는, 나도 징하게 기차를 타고 다니는 처지라 그랬는지, 맛깔나게 읽었다. 1등실이 아니라 이 아저씨처럼 완행, 보통열차를 타고 다니느라 하루에 서너 시간, 길게는 대여섯 시간씩 기차 안에 있었다. 사람 사는 집 담벼락 사이를 아슬아슬 지나가는 완행기차여서 시골 마을 구경, 한국과 비슷한 듯 깊어 보이는 산세 구경, 출퇴근하는 사람들 구경, 노선마다 다르게 생긴 기차 구경 등, 지루할 틈이 없었다. 게다가 직행이 아니어서 자주 갈아타야 했기 때문에, 집중하고 읽기엔 좀 지루할 듯한 이 여행기가, 오히려 짬짬이 읽기에 좋았다.
써로우는 기차로 유라시아를 가로지르면서, 정작 여행지에는 시큰둥하다.
'비행기 여행은 잠수함 타고 가는 거나 마찬가지다.','관광은 시간 죽이기로 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써로우는 여행노트에는 그날 먹은 음식, 기차 안에서 만난 사람들과 나눈 대화, 읽고 있는 책 등을 자세히 썼다. '기차'라는 공간에서 '여행'이라는 행위를 하는 데서 오는 감흥에 집중한다. 담배 피고, 술 마시고, 식당칸을 찾아가고, 바에 가고...신문 읽고, 책 읽고...그리고 다른 승객들과 시시덕거린다. 뭔가를 열심히 볼 생각이 별로 없다.
석 달이 넘어가는 장거리 여행은 마치 와인 테스팅하는 것 같다며, 어디는 '별로'고, 어디는 '그럭저럭', 어디는 '아마도', 교토를 라벨 이름을 기억해 두는 와인 병 같다고 보는 안목도 생겼다. 와인 시음의 기준은, 책 앞머리에 인용한 엘리어트와 나보코브의 말을 빌어 '냄새' 또는 '색깔'임을 넌지시 알려준다.
"the first condition of right thought is right sensation - the first condition of understanding a foreign country is to smell it..." -T.S.Eliot, 'Rudyard Kipling'
긴 여행을 하다 보면 이런 감각이 키워지는 걸까, 하는 의심은, 일본에서 '총알'같은 기차를 타고, 눈 깜짝할 사이에 '교토'에서 '오사카'로 도착하는 속도에 시큰둥해하며 적은 글에서 싹 가셨다. 그 짧은 시간, 한정된 공간에서 그가 접한 일본이라는 사회를 묘사한 부분에, 예리함과 통찰력에 감탄.
"all journeys were return journeys. The farther one travelled, the nakeder one got, until, towards the end, ceasing to be animated by any scene, one was most oneself..."
"any further travel makes a beeline to confession, the embarrassed monologue in a deserted bazaar."
여행 후반부에는 이런 깨달음에 이르면서, 런던으로 돌아오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서는 집에 돌아가고 싶어 안달인 한 남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2008년에 덧쓴, 책 서문에는, 넉 달 동안 여행하고나서 돌아온 집에서, 아내가 자신의 부재를 다른 사람으로 채웠다는 내용이 있다. 그런 상황에서 이 여행기를 썼을 거라 생각해보면, 글에서 묻어나는 불안과 삐딱함이 이해가 되는데, 그런 점이 또 이 책에 매력을 더하지 않았을지.
이 책이 크게 성공하자, '기차 여행'을 주제로 한 여행서를 이어서 냈다.
《The Old Patagonian Express》(보스톤에서 아르헨티나까지)
《 Riding the Iron Rooster》(중국)
《Dark Star Safari》(카이로에서 케이프 타운까지)
그리고 다음 읽을 책으로 봐 둔《Ghost train to the Eastern Star》
(첫 여행기 여정인 런던 출발 유라시아 횡단,을 다시 기차로 여행하고 썼다)
베트남에서 일본으로 비행기 이동 전에 다음 여정을 잠시 고민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그 가운데, 서울-부산-일본 노선도 있다. 이 책에 서울-부산 기차여행편이 실렸다면, 70년대이니 '경부 새마을호'쯤 되는 제목으로 글을 썼을텐데, 하는 생각을 했다. 한국의 대표 작가 이름도 나왔을 테고, (그땐 영어로 소개된 한국 문학이 더 적었겠지만) 한국의 '문물'도 좀 알렸을텐데.
일본 기차 안에서 일본 소설을 읽는 부분에서는 샘이 좀 났다. 게다가 이 책이 나온 뒤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기차여행 루트를 따라 여행했나를 생각해보면 말이다...
고종석의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이후로, 서문이 본문만큼이나 재밌는 책.
'railway bazaar'는 인도의 어느 거리 이름에서 가져온 것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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