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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전선/프랑스 아르트와

[Arras] Vimy Canadian Memorial


제 1차 세계대전 서부전선

캐나다 국립 비미 추모시설(Canadian National Vimy Memorial)





비미(Vimy)는 아라스의 북쪽 근교에 있는 마을인데, 제 1차 세계대전때 프랑스 북부 서부전선에서 큰 전투가 있었던 곳이다. 아라스 공세의와 함께 연합군에게 결정적이었던 비미 리지(Vimy Ridge) 전투다. 캐나다군이 독일군에게 승리했으나 희생자가 많았다. 1936년, 비미 리지 전투가 있었던 들판에 캐나다 병사들을 기리는 추모시설이 마련되었다. 



이 비미 고지대(Vimy Ridge)는 대전 초기인 1914년 10월부터 독일군의 손아래에 있었다. '바다로의 경주'때 말이다. 프랑스군은 이 지역을 탈환하려고 수 차례 공격했으나 번번이 실패였다. 1915년 9월 제 3차 아르트와 공세때는 프랑스군 전사자 및 부상자가 15만 명이나 됐다. 1916년 2월, 영국군으로 교체됐다. 1916년 10월에는 캐나다군이 투입됐다. 그리고 1917년 4월, 비미 전투가 개시된다. 9일에서 12일까지의 전투에서 캐나다군은 비미 고지대를 탈환했다. 캐나다군 3천600명 가량이 전사, 7천 여명이 부상 당했다.




▲ 캐나다의 20달러 지폐 뒷면.
비미의 추모 기념물과 양귀비. 양귀비는 플란더런필드의 상징이다.


그런데 이런 희생을 바탕으로 캐나다라는 나라는 어떤 결과를 얻게 된다. 바야흐로 캐나다라는 국가 개념이 자리잡았다고나 할까. 전쟁이 끝나고 캐나다는 1920년부터 전쟁 추모 사업을 시작했다. 추모기념물 설계가 현상 공모되고 캐나다 조각가 올워드(Walter Seymour Allward)의 설계가 당선되었으며 프랑스는 캐나다에 100ha의 땅을 내놓았다. 그리하여 1936년에 개장된 추모시설은 숙연하고도 평화로운 기운이 감도는 공원이었다. 


▼ 비탄에 젖은 어머니와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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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전사했으나 유해를 찾지 못한 11,285명의 캐나다 군인의 이름이 새겨져있다. 







 



(201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