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전선의 서쪽 끝, 니우포르트(Nieuwpoort)
1914년 8월 4일 벨기에 리에주 침공을 시작으로 독일군은 서부 전선에 첫 발을 딛었다. 벨기에 남쪽을 통과하여 프랑스로 진격하려는 슐리펜 계획이었다. 벨기에 아르덴넨 지방과 프랑스 알자스 지방에서 격전이 벌어졌다.
마스 강의 요새도시 리에주가 함락되자 벨기에 왕 알베르트 1세는 군대를 안트베르펀 기지로 후퇴시킨다. 알자스 지방에서 프랑스군과 영국군의 반격이 만만치 않았기에 독일군은 계획을 바꾸어 진로를 벨기에 북쪽으로 돌렸다. 안트베르펀을 치기로 한 것이다. 1914년 9월 말 독일군은 안트베르펀을 둘러쌌고 벨기에군과 영국군은 벨기에 해안의 오스텐더(Oostende)로 물러났다. 그리하여 전선은 알자스 로렌 지방에서부터, 뜻하지 않게 벨기에 해안까지 늘어났고, 양측은 기동전을 벌였는데 이를 '바다로의 경주(Race to the Sea)'라고 부른다.
(출처 www.greatwar.co.uk)
벨기에 해안에는 에이저르(Ijzer) 강이 북해로 흘러나가는 항구도시인 니우포르트(Nieuwpoort)가 있다. 물자를 싣고 북해로 들어온 배가 내륙으로 들어가려면 이 니우포르트를 거쳐야 한다. (*nieuwpoort=new + gate)
니우포르트 바닷가
전쟁이 시작된지 두 달만인 1914년 10월 11일, 벨기에 군대는 니우포르트에 도착했다. 안트베르펀,헨트, 브뤼헤, 모두 독일군에게 넘어갔고, 벨기에 군인들은 굶주리고 피곤한 상태였다. 서쪽으로 퇴각하는 벨기에 군인들은 140킬로미터를 4일 동안 걸어 에이저르 강까지 왔다고 한다. 에이저르(Ijzer) 강은 벨기에를 포함한 연합군의 보루가 되었다. 마지막 자연 방어선이니까. 에이저르 강만 넘으면, 독일군 쪽에서는, 바로 프랑스였다.
▼ 니우포르트 마르크트
'서쪽 모퉁이' 지역은, 평평하고 낮은 땅이다. 바다 어귀에서 갑문을 닫지 않으면 물에 잠겨 진창이 되는 땅.
▼ 니우포르트의 갑문
한젠포트(De Ganzenpoot)
이 갑문의 이름은 한전포트(Ganzenpoot)다. 거위 발. (*ganzenpoot=goose + foot)
거위발처럼 물줄기가 여섯 개로 갈라진다. 아니, 여섯 개의 물길이 이 갑문을 통과해 북해로 나가고, 이 중 세 개는 배가 드나드는 운하다. 물 줄기 여섯 개가 사방에서 이 곳으로 모여들어 니우포르트를 지나 북해로 빠져나간다. 에이저르 강, 운하 두 개, 수로 세 개, 해서 여섯 개다. 도버 해협을 건너온 보트들은 갑문 앞에 세워진 신호등을 보고 들어가겠지. 갑문에는 도개교가 걸쳐져 있다.
(출처: www.nieuwpoort.be)
바로 여기에서 벨기에는 살수대첩을 썼다. 갑문을 열어서 수방어선을 만드는 것은 벨기에와 네덜란드에서는 수세기 전부터 써온 방어전술이다.
헨드리크 헤이라르트(Hendrik Geeraert)라는 사람은 백년 전, 이 물길의 관리인이었다. 정확히는, 여섯 개 중의 하나인 '흐로테 베버르데이크파르트(Grote Beverdijkvaart)'의 관리인이었다. 헤이라르트는 자기 목숨을 걸고 안을 내놓았는데, 바로 갑문을 여는 것이었다. 이 사람이 아니었다면, 독일이 제1차 세계대전의 전승국이 되었을까? 또는 전쟁이 참호전으로, 대전으로 번지지 않았을까? 어쨌거나, 이 수방어 전술 덕분에 독일군은 에이저르 평야에서 서쪽으로 나아가지 못했고, 4년 동안 에이저르 강을 두고 전투를 벌였으며, 결과적으로 어느 한쪽이 결정적으로 우세하지 못했기에 제 1차 세계대전을 참극으로 만든 신무기들이 속속 사용되었다.
1914년 10월 29일 늦은 밤, 헤이라르트는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갑문을 열었다. 엄청난 물이 내륙으로 들이닥쳐 에이저르 평야는 물에 잠겼다. 니우포르트에서 딕스마위데(Diksmuide)까지 견고한 방어선이 만들어졌다. 하루만 늦었어도 이 지역은 독일군이 점령하여 프랑스로 진격하기란 일도 아니었을 거라고 한다.
▼ 예전 벨기에 지폐. 갑문을 배경으로 한 헤이라르트
그리하여 에이저르 강 평야 일대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상대적으로 평온할 수 있었다. 수면 높이는 독일군의 작전지도에 나와있는 것보다 2.4미터 높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수방어선으로 지켜낸 전선은 또다른 참혹함을 낳게 된다. 동물과 전사자의 시체가 썩어가고 전염병이 돌고, 에이저르 강을 사이에 두고 연합군과 독일군은 참호를 파고, 독가스를 쓰고…. 니우포르트에서 에이저르 강을 따라 딕스마위데로, 이퍼르레이 운하(Ieperleekanaal), 이퍼르(Ieper)를 지나 프랑스로, 스위스 국경까지, 4만 킬로미터의 참호가 만들어졌다. 전쟁의 첫 해 10월 말, 이 갑문을 열어 침수 전선을 형성할 때만 해도, 사람들은 전쟁이 그해 크리스마스를 넘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한전포트 옆에는 제1차 세계대전 전우회에서 기념물을 세워놓았다. 대전 당시 벨기에 군을 이끌었던 알베르트 1세 왕 기념물이다. 1938년에 만든 것이라는데, 공사 중이라 더 가까이는 가지 못했다.
기념물 아래에 기념관을 만들고 주변을 정비한다고 하는데 2014년 가을에 개관 예정. 승강기를 타고 전망대에 올라가면 거위 발 모양이 더 잘 보일 것 같다.
▼ 니우포르트 시내
▼ 시청사 건물 벽에 아래와 같은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니우포르트에서 마녀로 몰려 처형당한 이들의 명예를 복권한다는. 이름과, 당시 나이, 처형일이 적혀있고 "머리 숙여 용서를 구합니다"라는 시의 공식 사과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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