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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문학

투스카니의 태양 아래: At Home In Italy


Under the Tuscan Sun , Frances Mayes (1996)

로마 떼르미니역 서점의 여행자 겨냥 매대에서 우연히 샀고, 한동안 아껴가며 읽었다. (영화로 만들어졌고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였다는 건 몰랐다.)
프란시스 메이어스(Frances Mayes)라는 미국 작가가 이탈리아의 투스카니 지방 코르토나Cortona에 낡은 농가를 사서 집을 고쳐가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쓴 회고록(memoir)이다. 

한국의 귀농 현상처럼, 유럽에서도 특히 북쪽 나라에서는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등 남쪽으로 이사하는 사람들이 많다. 은퇴 후 노년을 보내기 위해, 별장으로, 또는 아주 이사해버리거나. 그 과정을 보여주는 TV 프로그램도 제법 있다. 1996년에 출판되었고 10년 가량의 과정을 담았으니 그때는 꽤 신선한 이야기였을 지도. 한국에는 왜 번역판이 안 나왔을까?


피터 메일의 귀농사《나의 프로방스》와 절로 비교해보게 된다. 영국인의 프로방스 정착 이야기와 미국인의 투스카니 정착 이야기는 공통점도 있고 물론 다른 점도 있다.
공통점이라면, 프로방스와 투스카니라는 장소 : 날씨(햇빛), 음식, 지역성.
이 세 가지만 충족되면 도시생활의 편리함은 포기해도 맘껏 행복해질 수 있다는 얘기인데, 여기서 잠깐 우울ㅠㅠ.  내가 사는 곳은...도시생활의 편리함도 없으면서, 날씨도 안 좋고, 음식도 엉망이고, 동네는 좀 험하고 지역주민은 불친절한데...

가장 크게 차별되는 점은 두 작가의 문체. 그리고 두 사람 다 '맛있게 먹는데 목숨걸고', 헌 집 고치느라 지역주민들과 부대끼는 과정에서,《나의 프로방스》는 1년 동안의 이야기인데 반해 이 책은 호흡이 길다. 그만큼 담고 있는 내용도 폭이 넓은데, 집을 개조하는 과정, 올리브와 포도 등 농사를 짓고 수확하기, 정원 가꾸기, 이탈리아말을 배우는 과정, 지역의 건축물과 예술, 투스카니 지방 요리 레서피, 주변마을 여행기 등이 담겨있다.

작가가 일상의 소소함을 음미하고 가꿔나가는 것이 가장 인상적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밥 해 먹고, 장보러 가서, 동네 사람만나 환담을 나누고, 낮잠도 좀 자다가, 친구와 모임도 가지고...하는 그저 평범하고 누구나 다 하면서 사는 이야기.
투스카니의 일상은 다소 이국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누구나의 삶도 그렇지 않은가.
보는 사람에 따라 매혹될 만한 이국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투스카니로 당장 달려가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내 일상도 투스카니처럼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게끔 한다.
home이라는 말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되고.

Where you are is who you are. The further inside you the place moves, the more your identity is interwinded with it.  Never casual, the choice of place is the choice of something you crave.(p.96)


다이안 레인이 주연한 영화도 있던데, 영화 줄거리를 보니 원작과는 좀 다른 설정이다. 거기에 대해서도 작가는 책이 세상으로 나갔을 때 새로 태어나는 하나의 다른 생명이라고 밝히고 있다. (끝부분에 영화가 현지에서 촬영될 때의 뒷 이야기도 조금 나온다.) 산드라 오와 라울 보바도 나온다니 영화도 챙겨봐야지.


그 밖에 이 책이 좋은 이유는

- 책 표지
- 시적인 문장(작가가 시인이다.)
- 그러면서도 기록에 충실한 담담한 문체. 지루하게 여길 수도 있다.
- 여기는 너무 아름다워요~하며 잘난체하지 않는 겸손함.
- 그런데도 투스카니는 너무 아름답게 느껴진다.
- 삶을 즐기고 누리고 음미하는 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