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문학

승리보다 소중한 것, 하루키

승리보다 소중한 것승리보다 소중한 것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하연수 옮김/문학수첩북앳북스

시드니 올림픽이 배경이니 도대체 언제적 이야긴가!
원작은 2001년에 출판된, 제목도 <시드니!>
하루키의 소설보다 수필을 좋아한다면, 그 중에서도 <먼 북소리>와 같은 여행기를 좋아한다면 이 '여행기+올림픽 취재기+수필'도 좋아할 것 같다.
시드니 올림픽을 경기장 안에서 관람하면서 선수들에게서 전달되는 감동을 그려낸 솜씨, 특히 호주의 원주민인 캐시 프리먼이 400미터 경주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후의 장면은 이 책의 하이라이트다. 특유의 냉소적이면서도 삐딱하지 않은 시선으로 올림픽의 상업주의을 비판하는 시각도 좋고.

그래도 하루키는 역시 여행기. 호주 여행기의 면모가 더 매력적이다. 매일 올림픽 경기장으로 출근하고 원고를 쓰면서도 아침 조깅과 시드니의 일상을 건져내어 다듬어 보여주는 솜씨때문에, 읽다보면, 나도 시드니에서 이렇게 며칠 지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던 걸. 꼭 시드니가 아니라도.

예를 들자면,

"호주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구매 의욕이 생기지 않는 나라다. 어느 가게에 들어가도 사고 싶은 물건이 거의 없다."(p.75)
"이 대륙은 다른 토지와 거의 교류를 하지 않은 채 6만년 동안을 고독하게 지냈다."(P.37)

축구경기를 보러 시드니에서 브리즈번으로 가는 먼 길, 그 여정의 기록도 좋다.
하루키가 이런 여행기를 더 써주었으면~. 

마라톤 선수들의 정신세계도 아름답게 전달된다.
"다카하시 나오코는 자신의 말로 이야기할 수 있는 여성이다. 그건 분명하다. 게다가 그녀는 자신의 말로 이야기 하는 것을 즐긴다. 이제 남은 것은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느냐다."(p.200)
"선수들이 출발선에 선다. 깊은 침묵. 밀도가 있는 침묵이다."(P.205)
"지인들의 따뜻한 성원을 받고 마침내 자아가 돌아온다."(P.207)

또는 이런 말투로,
"일본 선수는 철봉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걸까. 어쩌면 피곤했는지도 모른다. 본인도 떨어졌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듯. 내 말이 위로가 되지는 않겠지만 살다보면 그런 일도 일어나는 법이다. 사람은 그렇게 악몽에 견디는 법을 배운다. 나도 배웠다. 다만 TV로 중계되지 않았을 뿐이다."(P.203)

하루키 자신도 이 책에서
"나는 여행하면서 글 쓰는 일을 좋아합니다. 다음 작품은 올림픽 경기가 양념으로 들어간 여행기가 될지도 모르겠네요."(p.73) 라고 말했으니 나는 이 책을 유쾌한 호주 여행기로 읽었다.

http://browncafe.tistory.com2008-12-18T09:22:570.3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