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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문학

내가 여기서 뭐하고 있지, 브루스 채트윈


What am I doing here, Bruce Chatwin, 1988 

'내가 여기서 뭐하고 있지?'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낯선 나라의 낯선 호텔방에서 여기가 대체 어딘지 잠시 가늠해야 할 때, 몇 시간을 걸려 찾아갔는데 가이드북에 낚인 기분일 때, 여행길에서 이런 생각이 들 때. 내가 여기서 대체 뭘 하고 있는지 묻는 일이 여행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What Am I Doing Here (Reprint, Paperback)'What am I doing here? '는 시인이자 여행가였던 랭보가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에 머물 때 집으로 보낸 편지에서 쓴 말이다.
영국인 여행가, 여행작가, 소설가인 브루스 채트윈 (Bruce Chatwin,1940-1989)은 생전에 마지막으로 출판된 책의 제목으로 랭보의 화두를 빌려 왔다.
 
브루스 채트윈은 꽤 성공한 소더비의 예술품 전문가에서 작가로 변신한다.
여행가에서 여행작가로, 그리고 허구와 실화를 오가는 작품을 썼으니 작가라고 해야 할 테다. 예술에 대한 이해와 고고학적 관심으로 아프리카, 파타고니아, 중국, 호주 등 세계 여러 곳을 여행하고 쓴 《In Patagonia》《The Songlines》등의 작품이 있다.

《What am I doing here》는 여행기라기보다는 자유로운 주제의 글을 묶어놓은 산문집인데,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의 이야기, 일화, 문화계 인물들과의 만남을 그리고 있고, 러시아, 중국, 아프가니스탄 등 여행지의 에피소드도 등장한다. 1988년에 이 책을 마무리할 당시의 채트윈은 너무 이른 죽음을 맞이하기 한 해 전이었다. 그래서인지 책 곳곳에서 서늘한 회고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채트윈은 양성애자 혹은 동성애자였다고 하는데 49세라는 이른 나이에 재능있는 작가의 삶을 마감하게 한 것은 에이즈로 알려져있다. 그런데 사망 한 해 전의 투병기간 동안 쓴 이 책에는 '말라리아에 걸렸다', '중국 어딘가에서 알 수 없는 균에 감염되었다'는 등의 내용이 나온다. 그가 자신이 에이즈에 걸린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인지, 밝히고 싶지 않았던지는 모르겠으나 말년에는 정신적, 심리적으로 상당히 고통받아서 무너지기도 했던 모양이다.



건조한 듯 가슴을 찌르는 분위기가 헤밍웨이를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문학적 고백이 나와 있다. 헤밍웨이와 로렌스가 자신의 작가라는 고백이 왜 이렇게 쓸쓸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브루스 채트윈은 도대체 왜 그렇게 비싼지 이해할 수 없는 그 공책, 몰스킨의 애호가로도 유명하다.
첫 작품 《파타고니아에서(In Patagonia)》를 쓰기 전에 몰스킨 공장이 망하자 싹쓸이를 해서 파타고니아로 갔다고 하는...

반 고흐, 헤밍웨이, 피카소 등 예술가들이 이용했다는 이미지 때문?
검정 가죽표지에 고무밴드가 있는 이 수첩, 공책은 그 품질이나 실용성 면에서도 그리 특별해 보이지는 않은데, 막상 작은 수첩을 사러 문방구에 가보면 그 비싼 가격을 이해할 수 있다. 유럽에는, 한국만큼 문구류의 품질이나 디자인이 다양하지 않은데다, 이쪽으로도 전통을 추구하는 것인지, 도무지 세기 전 예술가들이 썼던 그 수준의 문구류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고 있지 않다는 게 내가 생각하는 이유다. 몰스킨을 특별히 애호하는 건 아니지만, 편하게 쓸 수 있는 작은 수첩 종류는 몰스킨 외에는 사실 찾아볼 수가 없다. 한국에서처럼 여러 종류의, 여러 크기의, 질 좋은 종이에 스프링 달린,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그런 수첩은 없다...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이 수첩을 사 쓰게 된다. 한국에서 사온 스프링 수첩이 다 떨어지면...

http://browncafe.tistory.com2009-04-16T16:20:440.3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