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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문학

여행자의 호텔, 세스 노터봄

노터봄의 호텔, 세스 노터봄, 2002 
Nootebooms Hotel, Cees Nooteboom  


네덜란드 작가 세스 노터봄(Cees Nooteboom, 1933 ~)은 소설 ·  희곡 ·  산문  ·  시를 쓰며,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여행작가이기도 하다. 하리 물리쉬와 함께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됐던 거장.
지금도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지만, 세어보면 그 나이에 놀라게 된다. 얼마전 네덜란드의 일간지 NRC(http://www.nrcboeken.nl/)에서는 이 작가의 75세 생일을 맞아 특집 기사를 내기도 했다. (생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데다, 이 노작가의 창작이 계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 세스 노테봄, 각각 1963, 1978, 2004년. 사진 De Arbeiderspers, Leo van Velzen & Vincent Mentzel



노터봄 Nooteboom은 네덜란드 덴하흐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부터 유럽을 떠돌고 세계 곳곳을 여행했다.
역시 네덜란드의 작가이자 다방면의 예술활동을 하는 얀 크레머Jan Cremer의 자전적 소설도 여행기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는데, 삶 자체가 여행이구나 하고 인상적으로 읽었다. 국경이 있던 시절, 네덜란드를 떠나 히치하이킹으로 파리까지 여행하고, 무전여행으로 유럽을 떠돌아 다니던 얀 크레머가 마치 랭보 같다고 생각했었는데, 노테봄의 이력도 비슷하다.

《Nootebooms Hotel(노테봄의 호텔, 2002)》은 여러 해 동안 잡지나 신문에 기고한 글을 모은 산문집이다.
  ('노터봄(Nooteboom)'이 '호두나무'라는 뜻의 노턴봄(Notenboom)'과 비슷해서 이 책 제목이 '호두나무 호텔'인 줄 알았음.) 이탈리아의 베니스, 아일랜드의 아란 섬, 스위스 쮜리히, 일본 교토에 대한 글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사진, 회화, 문학에 대한 평론이랄까 산문이 이어지고, 마지막으로  '제 2의 고향'인 스페인 여행기를 담고 있다. 내공이 상당한 여행작가들이 가지고 있는, 방랑기질, 고독추구, 명상, 철학의 깊이와, 문학 · 역사 · 예술에 대한 조예가 방대하지만 현학적이지 않다. 보르헤스, 나보코브를 자주 언급한다.

세계 여러 곳을 여행하고 글을 썼지만, 노터봄하면, 스페인과 일본이다. 1944년 스페인을 처음으로 여행했고, 이후에는 스페인과 암스테르담을 오가며 두 집 살이를 한다. 그래서 스페인에 대한 이해가 여행자의 수준이 아니라 깊고도 넓다. (그의 스페인 여행기《De Omweg naar Santiago(산티아고 가는 길)》가 유명.) 일본에 관해서라면, 아무래도 유럽 작가들 중 일본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 놓을 수 있는 작가가 없기 때문이 아닐지. 이 책에서도 일본의 사이고쿠 33개 관음사찰 순례에 참가한 내용이 나온다. 시코쿠의 88개 사찰 순례보다는, 본인이 33년생이라 33사찰 순례를 택했다는데, 자연스레 일본의 사찰순례 문화를 비롯, 일본의 풍경과 문화가 소개된다. 노터봄이 일본을 여행하게 된 계기는 스위스에서였다. 스위스를 자주 여행하던 그가 쮜리히의 어느 서점에서 발견한 일본 사찰 순례 서적을 발견, 호주를 다녀오는 길의 중간 기착지로 일본 교토를 들리고, 사찰순례까지 이어진다.
그의 인터뷰나 낭독회에서도 일본에 대해 자주 언급한다.
유럽 작가들이 쓴 여행기에는 양념처럼 중국과 일본이 등장할 때가 있다. 그렇게 보지 않으려해도, 어쩐지 오리엔털리즘의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들은 일본도 가고 중국도 가면서 왜 한국은 여행하지 않았던 걸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차피 아시아이므로 일본과 중국을 봤으면 됐지, 그 전쟁을 막 마친 나라에 뭐 특별한 게 있으랴고 하는 심정일까? 

첫째, 스위스에 일본 사찰 순례가 소개되어 있다.
둘째, 유럽의 여러 언어에 능통한 노터봄은 필시 불어나 독어로 번역되어 있었을, 일본 관련 서적을 접하고 깊은 인상을 받는다.
세째, 기회가 되어, 마음에 담아 두었던 일본을 여행한다.
네째, 그의 여행기에 일본의 전통, 불교, 다도, 문학,  도자기,회화 등 문화예술이 등장한다.
그의 소설 《Rituals(의식)》에도 일본 문화가 주요 모티브다.
다섯째, 그의 책은 세계 여러 언어로 번역 출간되어있다. 
여섯째, 그는 유력한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다.

이런 과정을 거쳐 한 나라가 세계에 알려지는 것은 아닐까? 그의 책을 읽고 일본 사찰순례를 떠나거나, 그의 소설에 언급되는 일본 작가 (바쇼,카와바타 야스나리 등)의 작품을 찾아 읽는 독자가 있을 것이다. 코스프레나 오타쿠의 문화가 아니라, 깊은 정신세계와 신비로운 선 문화의 나라로 비춰지는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한 인식을, 전자제품의 우수성이나 자동차를 사용하면서 느끼는 인상과 비교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