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문학

축구 전쟁, 카푸시친스키

카푸시친스키Ryszard Kapuscinski《The Soccer War》를 읽으면서, 몇 번이고 영어라는 보편적인 세계어에 대해 고마운 기분이 되었다. 아니면, 내가 어떻게 폴란드어로 씌여진 폴란드 저널리스트의 글을 읽을 수 있겠는가. 카푸시친스키라는 사람의 이름도, 그가 기록한 수십년 동안의 역사도 몰랐을 테고.

1969년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 사이에 일어난 100시간의 전쟁인 '축구전쟁'을 표제로 하고 있어서 라틴아메리카의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책은 그보다 더 다양한 세계를 다루고 있다.
1958년에서 1976년 사이 세계 도처에서 벌어진 혁명과 내전을 기록한 저널리스트의 보고서이자 에세이이다.

카푸시친스키가 저널리스트로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아프리카에 관한 내용이 가장 많고, 칠레, 온두라스, 엘살바도르에 이어 사이프러스, 팔레스타인까지 이어진다.
 

가나가 영국에서 독립하는 과정, 콩고가 벨기에에서 독립하여 민주공화국을 세우는 과정, 알제리, 나이지리아의 내전, 이 시기 아프리카 국가들의 지도자 Lumamba, Nkrumah, Ben Bella 등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 사이 카푸시친스키는 말라리아에 걸리고 여러 번 죽음을 모면한다.

그리고 1967년 카푸시친스키는 칠레의 산티아고에 있었다.
체 게바라를 쏜 볼리비아 군인의 이야기에 이어 1969년에는 '축구전쟁'의 한복판에 뛰어든 이야기다.

1970년 멕시코 월드컵 예선전이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를 오가며 열렸고, 온두라스에서 열린 첫 경기에서 온두라스가 1대 0으로 이기자 엘살바도르의 18살 소녀가 권총으로 자신의 심장을 쏘았다는 것. 당시 엘살바도르의 신문에는 "어린 소녀는 그녀의 조국이 무릎 꿇는 것을 볼 수 없었다."라고 실었다는 것. 엘살바도르의 수도인 산살바도르의 TV에 그 소녀의 장례식이 방송되었고 대통령, 장관, 고위 군 간부가 장례식 행렬에 참가했다는 것 등 두 국가가 어떻게 서로 애국주의를 부추겼는지를 전한다. 
나는 '세계지리부도'의 중앙아메리카편을 펼쳐놓고 지도를 흘낏거리며 책을 읽었다. (이 두 나라가 어떻게 국경을 맞대고 있는지도 몰랐다...)

엘살바도르가 공격하던 그 순간, 전선의 상황과 함께 전쟁의 진짜 이유와 배경도 빠뜨리지 않는데, 온두라스에 불법 정착한 엘살바도르 농민들과 그를 둘러싼 긴장, 두 나라의 봉건적인 농민경제 상황 등을 객관적으로 기록하면서도 카푸시친스키는 어느 편도 들지 않는다. 누가 나쁜 놈이고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하지만 <The Soccer War> 장의 다음 내용은 <Victoriano Gomez on TV>라는 제목으로, 엘살바도르의 '빅토리아노 고메즈'라는 청년이 공개처형된 상황을 적고 있다. 역시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나는, 이 청년의 이야기를 읽는 것이 고통스러우면서도, 그의 글은 너무도 담담하고 또 아름답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몇 문장을 인용하려고 했는데, 발췌하기가 마땅치 않아서 거칠게 옮겼다.

<Victoriano Gomez on 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