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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문학

싱가포르 여행길에 읽은 책

[소설]Love and Lust in Singapore

이 나라 사람들은 어떤 책을 읽나, 책방을 둘러본다. 서점이 마음에 들면, 뜻밖의 '득템'을 할 수도 있겠다 싶어 구석구석 돌아본다. '아시아 문학' 코너가 따로 있다는 점이 눈에 들어왔다. 영미권 베스트셀러야 어디서나 살 수 있는 데다 값도 비싸서 굳이 살 필요가 없다. 접해 본 적 없는 아시아 문학, 특히 동남아시아 작가들이 쓴 책을 읽어보고 싶어서 '현지 문학' 코너를 기웃거리다가 이 책을 골랐다.
싱가포르에서 태어났거나 살고 있는 작가 여럿의 단편을 묶은 소설집이다. 꽤 젊잖아 보이는 싱가포르 사람들 인상에 책 제목은 좀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했지만, 단편 하나하나 읽어가면서, 아, 이 나라에서 느끼는 열기가 그저 무더위 때문만은 아니구나 싶었다. 여기도 참 부글부글 끓는 나라다. 결혼, 가족, 친구, 사랑, 욕망, 전통적 가치...싱가포르를 조금 엿본 느낌. 


[여행기]Notes From an Even Smaller Island, Neil Humphreys, 2001

차이나 타운과 래플스 역 사이를 오가며 호커 센터와 카페를 들락거리다가, 탄종 파가역 근처에 있는 서점 한 군데에 들어갔다. 한국처럼 공부 많이 하기로 이름난 사람들인데 서점이 많이 없어서 섭섭하고 의아했다. 여행자의 동선에 있지 않아서 그렇겠지만. 한국처럼 온라인 서점을 더 애용하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어디 학원가나 대학교 근처에 서점이 몰려있는 지도.
어쨌거나 이 탄종파가에 있는 서점은 고층 빌딩들 사이에 있어서인지 경제나 자기계발 관련 책이 서가의 반을 넘게 채우고 있었다. 그래도 Borders에서 보지 못한 책들이 눈에 들어왔는데, 잘 읽히는 책을 중심으로 정리되어 있는 점이 그리 크지 않은 서점의 미덕이었다. 닐 험프리스Neil Humphreys라는 사람의 싱가포르 체류기가 눈에 잘 띄는 곳에 꽂혀있었다.

싱가포르 체류기 3권을 아예 세트로 묶어도 놨는데, 우선 그 첫번째 책《Notes From an Even Smaller Island》을 집어왔다. 작은 섬나라 영국 사람인 작가가 영국보다 좀 더 작은 섬나라 싱가포르에서 살며 쓴 글이다. 책 제목은 빌 브라이슨의 책《Notes from a Small Island 》에서 가져왔나보다. (빌 브라이슨의 영국 여행기)
싱가포르에서 뿐만 아니라 영국과 호주에서도 꽤 인기를 끌었으며 곧 영화로도 나온단다. 키득키득거리며 재밌게 읽었다.  '외국인' 또는 '여행자'의 눈으로 보는 싱가포르 이야기이지만, 얼마쯤은 '현지'에 발 담그고 있는 사람이 가지는 '애정'도 느껴지고, 영국과 싱가포르, 유럽과 아시아라는 두 문화를 오가는 관찰에 고개 끄덕이며. 
빌 브라이슨보다 더 기분좋게 웃긴다. 싱가포르에서 궁금했던 것, MRT를 타고, 카페에서 아침밥을 먹을 때나, 호커 센터에서 락사를 먹을 때, 차이나 타운의 상점에서, 눈을 사로잡았던 것, 누군가와 얘기하고 싶었던 호기심이 많이 풀렸다. 다음에 싱가포르에 가게 된다면 나머지 두 권도 꼭 읽어보고 싶다. 특히 싱가포르 본격 여행기라고 할 만한 세 번째 책.

전통적 가족관계, 경제적으로 급성장한 사회, 물질적 만족을 쫓는 모습, 탐욕의 세대 전이, 외부에 대한 열등의식, 안정된 중산층 사회, 약자에 대해 눈 감기, 생산성과 효율성의 양면성...유쾌하게 써내려간 행간에서 이런 문제의식들이 특히 목에 자주 걸렸다. 마치 한국사회를 보는 듯도 했다.  교육열, 뭔가를 추구할 때 발휘되는 정신력,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노력, 근면함, 열정, 질서, 치안 같은 긍정적인 면을 다룰 때는 또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 가운데, 싱가포르를 이해하는데 키워드가 될 만한 '키아수kiasu' 라는 말이 있다.
헬스장에서 운동을 할 때나 공중화장실에 앉아서조차 휴대전화를 받는 것. 결혼식장, 교회, 교실에 있을 때도 걸려온 전화를 놓치면 안되는 것. 최고가 되려는 욕망, 뭔가를 놓치면 안된다는 사고방식때문이라는 게 작가의 생각이다. 먹고 살만 해졌지만 사회적 안전망 없이 개인이 개인의 삶을 책임져야하는 사회, 열심히 일하면 그럭저럭 살 수 있으나, 그 쳇바퀴에서 절대 내려올 수는 없는 사회. 제 탐욕을 만족시키려면 '효율성'을 유지해야 하고, 거기서 '공포'가 오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잃을까봐 두려워'라는 뜻의 키아수에서 나온 '키아수이즘kiasuism'.
단기간에 경제적으로 급성장한 자본주의,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사회에서 이런 현상은 어쩔 수 없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