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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미술관

[네덜란드] 크뢸러 뮐러 미술관 -피트 몬드리안

네덜란드 더 호헤 벨루에, 크뢸러-뮐러 미술관

피트 몬드리안

크뢸러-뮐러 미술관에서 반 고흐 다음으로 이름난 컬렉션은 몬드리안이다. 미술관의 설립자 크뢸러 뮐러 부인의 안목에 새삼 경의를 표하며!, 몬드리안의 파리 시절 그림들을 참으로 귀하게 보았다. (몬드리안의 초기 회화 작품은 주로 덴하흐 시립미술관에 있음.) 

몬드리안은 네덜란드 뿐만 아니라 서양 현대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고, 특히 네덜란드에서는 더 스테일(De Stijl) 운동 등 건축을 비롯한 문화 전반에 큰 획을 그은 예술가여서 몬드리안을 모르고는 네덜란드의 현대를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까지 든다. 네덜란드의 단순하고 담백한 자연 풍경이 네덜란드의 구성주의와 미니멀리즘에도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나 혼자 생각하곤 하는데, 몬드리안의 작품 변천과정을 살펴보면 그럴 듯하다. 칼뱅주의 집안에서 자라난 몬드리안이 '근원성'을 추구하는 그 정신세계 또한 지극히 네덜란드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우리에게 원색의 구성 그림으로 익숙한 몬드리안은 처음부터 단순명료한 선으로 된 추상화를 그린 것은 아니었다.

렘브란트, 반 고흐 등 모든 네덜란드 화가들이 한번씩 화폭에 담았던 풍차는 역시 몬드리안의 초기 작품에도 나타나는데, 당시 프랑스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은 이런 그림도 있다.

▲ 달밤의 헤인 강변 동쪽 풍차(De Oostzijdse Molen aan het Gein bij maanlicht, 1902/3), 암스테르담 왕립미술관

▲ 서너개의 기둥이 있는 돔뷔르흐의 해변 (Strand met drie of vier pieren bij Domburg, 1909), 크뢸러-뮐러 미술관

피트 몬드리안(Piet Mondriaan)은 1872년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근처의 아메르스포르트(Amersfoort)에서 태어났다. 암스테르담 미술학교를 졸업하고 암스테르담에서 작품 활동을 하면서 화가로서 이미 성공을 이룬다.
1909년부터 두 해 동안 몬드리안은 네덜란드의 제이란트주(Zeeland)에 있는 바닷가 마을 돔뷔르흐(Domburg)에서 여름을 보내는데, 이 때 네덜란드 바다, 모래언덕 등 바닷가 풍경을 소재로 한 그림을 많이 그렸다. 돔뷔르흐의 풍차와 교회를 그린 그림도 유명하다. 이 때 얀 토르오프(Jan Toorop)가 몬드리안을 자주 방문하며 교류했다고 한다.


▲ 모래 언덕 풍경 (Duinlandschap, 1911), 덴하흐 시립미술관

덴하흐 시립미술관에 있는 이 시기의 그림들을 보면, 점점 선이 단순해지고 색상도 원색으로 바뀌어가는 등 추상화 경향을 띄어간다. 몬드리안이 신지학에 심취했을 때였다. 파리에서 큐비즘을 접하기 이전의 이 돔뷔르흐 시절부터 그의 풍경에는 추상화 경향이 보인다.

▲ Tableau no. 1(1913 )

1911년 몬드리안은 암스테르담을 떠나 파리로 간다. 그리고 피카소와 브라크(Braque)의 작품을 만났다. 몬드리안은 파리에서도 자신의 고유한 주제인 풍경화를 계속 그렸다. 네덜란드의 초지, 바다, 하늘, 교회탑 그리고 파리의 지붕들. 제 1차 세계대전이 난 1914년에는 다시 암스테르담으로 돌아왔고 바르트 판 데르 레크(Bart van der Leck), 테오 판 두스뷔르흐(Theo van Doesburg)와 교류했다. 크뢸러-뮐러 부인이 후원자가 되었다.


▲ 흑백 구성 10 (Compositie 10 in zwart wit,1915), 크뢸러 뮐러 미술관
이 그림에서 바다가 연상되는지. 네덜란드 바닷가의 수직 기둥과 수평을 이루는 파도와 수평선이 보이는지.





▲ B 색상 구성(Compositie in Kleur B, 1917), 크뢸러 뮐러 미술관


1917년에는 테오 판 두스뷔르흐와 잡지 더 스테일(De Stijl)을 발간하며 더 스테일 운동에 참여한다. 더 스테일 운동은 미술, 건축, 디자인을 어우르는 개념으로 이때부터 몬드리안의 그림 배경은 흰 색이 되는 걸 볼 수 있다. 당시 근대건축운동이 활발하던 네덜란드에 더 스테일 그룹의 예술가들은 그들의 이상을 실제 건축에 적용하기 위한 그림을 그린 것이다.


▲ 스테인드글라스를 위한 구성 Ⅲ
Compositie voor glas-in-loodraam Ⅲ
(1917), 테오 판 두스뷔르흐 Theo van Doesburg  



테오 판 두스뷔르흐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에 영감을 받아 그린 위의 구성작품을 보면 두 화가가 얼마나 활발하게 교류했는지 알 만하다. 나중에는 두 화가 사이의 '사선논쟁'으로 나아가서, 몬드리안은 '더 스테일' 그룹을 탈퇴한다. 몬드리안은 그뒤로 파리와 네덜란드를 오가며 활동했고 그림에서는 빨강,노랑,파랑과 검정, 회색의 구성이 확고해졌다. 1938년 새로운 생활을 추구하며 런던으로 이주한 그의 집 마당이 폭격을 맞자 1940년 뉴욕으로 가서 1944년 삶의 마지막까지 살았다.

몬드리안의 뉴욕시절 작품인 '부기우기', '뉴욕 시티' 시리즈 등을 보면 뉴욕이라는 대도시가 주는 경쾌함이 느껴진다. 아니면 삶을 마무리하는 단계가 되자 그가 추구했던 근원과 본질이 밝아지고 가벼워진 것일까?
네덜란드의 북해 바닷가 모래언덕을 하염없이 걸을 때나 멀리 풍차가 보이는 이른바 '폴더 경관'을 자전거로 달려보면, 세상이 수직과 수평으로만 이루어져있다는 걸 실감한다. 몬드리안이 언급한 '끝없는 공간'이라는 것이 이런 것인가 하고 짐작도 하고. 굽이치는 산자락이나 사철 풍경이 바뀌는 변화무쌍한 자연 속에서 살았다면, 금욕적인 칼뱅주의 사회가 아니라 뜨거운 햇살 아래 즐기고 마시는 문화에서 자랐다면, 그의 그림은 차가운 추상이 아니라 뜨거운 추상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도. 


몬드리안의 2차원을 3차원으로 만든 '더 스테일'의 건축가 리트펠트(Rietveld)의 작품, 위트레흐트에 있는 슈뢰더 주택.